등산

정기어린 금오산

먼당 2008. 9. 24. 19:43

 

2007년 7월  14일 토요일

 

구미의 진산 금오산 등산을 하다.

금오산은 백두대간상의 초검산에서 남동쪽으로 갈라진 지맥이 수도산을  솟구치고 다시 북쪽으로

 뻗어 올라간 능선의 끝 부분에서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 보면서 우뚝 솟아 있는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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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고속도로에서 바라보면 산전체가 부처님의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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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들머리는 법성사에서 시작하여 채미정으로 하산을 하기로 한다.

들머리에 있는 법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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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성사 절안쪽으로 들어서 뒤편으로 나가면 곧 산행이 시작되고 얼마 오르지 않아 좌측으로

  접어들면 바로 산으로 들어선다. 수림이 우거진 계곡을 따라 오르면 오른쪽에서 갈라지는

지맥이 나오는데 그지맥을 따라 잠깐 올라가면  작은 계곡속에 숨겨진 무명 폭폭가 나온다.

산행은 다시 내려와서 뚜렷한 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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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불이 있는 정상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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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 바위면을 깎아 만든 높이 5.5미터의 고려시대 보살상으로 보살상이 암벽의 모서리 부분을 중심으로

양쪽에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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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산성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성터로 고려말에 선산.인동.성주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성을 지켰으며 디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해 두었던 군창을 두었다.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이중으로 돌로 쌓아만든 산성이다. 외성은 계곡을 감쌌고 둘레가

5리나 되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키로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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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암으로 통하는 동국 제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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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부근 바위 벼랑밑에 지어져 있는 약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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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암 종각이며 출입은 통제되어 있다. 이곳에서 보면 구미시와 굽이굽이 돌아가는 낙동강하며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경부고속도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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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승달이 걸린 모양처럼 아름다워 이름조차 현월봉이다. 금오산 정상에 세워져 있다.

구미의 진산 답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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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옆에는 군사 기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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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내성터 이며 지금은 예쁘게 단장을 해놓았으며

많은 등산객들의 쉼터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취사와 조리를 할수 있으며 구미시민들이

자주 찾아 청소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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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굴로 내려서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정상의 모습 대혜계곡을 중심으로 좌우능선에는 수직 절벽지대가

 많아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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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 들머리에 있는 금오산 저수지이며 주변 일대에는 벚나무의 대단지 조성으로 4월달에는

벚꽃천지로 주변이 황홀하다. 대해폭포의 물줄기를 조절하기 위해 만든 인공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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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27미터의 웅장한 대혜폭포 물줄기를 조절하는 댐이 있어 사시사철 물이 흐른다.

폭포 아래에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피서를 즐기는 인파들이 많으며 폭포옆 절벽 벼랑끝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절벽 중간쯤에 도선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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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굴로 오르는 길은 아슬아슬한 절벽옆으로 올라가지만 안전 철책이 설치되어있다. 

도선굴 내부모습이며 항상 기도를 하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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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굴 아래에 있는 해운사와 절벽에 있는 도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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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미정 입구 고려말 성리학자이며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더불어 고려삼은의 한분인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44년에 건립한 정자다.

길재는 고려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수 없다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채미"란 이름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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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을 마음에 품고 지은  회고가

오백년이나 이어온 고려의 옛서울 (송도-개성)을 한필의 말을 타고 들어가니  

산천의 모습은 예나 다름없이 그대로이나  인걸은 간곳이 없다

아 슬프다. 고려의 태평한 시절이 한낱 꿈처럼 허무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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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정은 홍기문을 지나 우측에 있는 정면 3칸 측면3칸 규보의 팔작집이다 뒤편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의

어필 오언구가 있는 경모각과 유허 비각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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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미정 앞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꾸며 평소에도 아이들과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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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는 산행을 마치고 돌아 오는길에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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