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을 일찌감치 먹고 오늘은 동본원사와 헤이안신궁 청수사 관광을 나섰다.
오사카에는 800개의 다리가 있고 교토엔 800개의 절이 있다고 할정도로 많은데 그중에서도 동본원사
(히가시혼간지)와 서본원사(니시혼간지)는 정토신앙의 본산지입니다. 정토신앙은 일본에서 가장 큰
불교종파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본원사란 이름으로 창건을 하였는데 절이 너무나 방대하게 커지고
따르는 신도들이 많아지다보니 도꾸가와 이에다스가 분리를 시켜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하는데
동본원사를 지을때 하도 절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고 사고가 끊이질 않아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엮어서
밧줄을 만들어 그 밧줄을 사용하여 절을 짓자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있는 건물은 1602년에 세워졌지만 여러번의 화재를 겪은후 1895년에 재건된것이고요.
교토시내에서는 가장 큰 목조건물입니다.

절을 지을때 사용하던 도구로 물건을 옮길때 위에 얹어 끌던 기구라고 합니다. 옆에는 이것보다
조금 작은 기구도 있고 머리카락을 섞어 엮어 만든 밧줄도 보관이 되어 있는데 삼으로 엮은 밧줄에
검은 머리카락이 섞여 있는 형태입니다.

본당 옆에는 부속건물인 어영당을 개축하고 있는데 바깥 건물을 철골로 지어 그안에서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기간이 오래걸리는 관계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천막을 사용하는데 비해
완전한 건물을 지어놓고 그안에서 작업을 한다고 하니 철두철미한 일처리에 놀랍습니다.

또한 특이한것은 일본은 부처님을 비물이라고 하여 본당 깊숙히 모셔두고 공개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절에 특별한 행사가 있는날에나 한번 공개를 한다고 하는데 청수사는 30년에 한번 공개를
한다고 하니 그것 또한 우리나라 절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그리고 보통 절이 시내 가운데 있고요.
음용수는 식수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죄를 사하는 의미로서 입과 손을 씻는데 사용을 많이 합니다.

헤이안 신궁 입구오른쪽에는 행사때 쓸 술을 기부받기도 하는데 빈 술통으로 장식을 해놓았다.
보통의 일본 절이 색상이 어두운데 반해 이 신궁은 밝은 색으로 단장을 해놓았다.


서기 794년 헤이안경을 처음으로 천도한 칸무천황을 시작으로 1868년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왕가가 애도인 동경으로 옮기기 전까지 1100년 동안 일본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백제인 칸무천황 아버지는 코우닌천황이고 어머니는 백제인 화신립이다.(무령왕의 후손)
그런 칸무천황을 제신으로 칸무천황 천도1100제를 기념으로 창건한신궁이며 뒷날 헤이안경
최후의 천황인 코우메이 천황을 합사했다. 좌우 똑같은 대칭형으로 지어져 있으며 주홍색과
청색으로 색을 입혀 약간은 촌스런 모양새며 단청은 없어 약간은 단조로운 편이다.

기부받은 술은 안쪽에 따로 보관을 하고 있으며 10월22일에는 이곳에서 교토 3대 축제의 하나인
지다이 마쓰리가 열리는데 헤이안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의 풍속행렬이 길을 메우며
구경꾼들로 붐비고 있다. 이 기간에 술통을 깨뜨려 나누어 마시며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신궁뒷편으로는 지천 회유식 정원이 유명하나 별도로 요금을 내어야 둘러 볼수 있으며 3개의 연못과
4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에는 수양 벚나무가 화사하게 매화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붓꽃이
유명하다고 한다.크기는 헤이안경의 궁전을 8/5로 축소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절마다 신궁마다 점을 본다음 종이는 가져가지 않는 미신때문에 나무가지에 접어 달아두고 가는데
마치 꽃이 핀듯 하다. 가장 미신을 많이 믿는 나라가 일본이라더니 기독교가 적은것을 보니 실감이
난다.

아리따운 가이드 아가씨

마치 2층버스처럼 보여서 다가가서 보니 운전석만 낮은 버스가 많았다. 안전운행에 도움이 되려나?

다시 발걸음은 청수사로 향하고...
마침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 복장의 아가씨 둘이서 올라가는데 일본 학생들이 여행을 온건지
자기나라 옷인데도 신기한듯 연신 카메라로 찍고 있었고 집사람도 부탁해서 한커트 했다.
보기가 힘들다던데 운이 좋았던건지 매주 기모노를 입는 행사가 있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우연히 마주쳤다. 근데 화장을 목까지 진하게 해서 약간은 거북했다. 게이샤들은 얼굴 표정에
변화를 주지 않기 위해서 진하게 화장을 했다던데...

기요미즈데라 청수사 입구 사천왕문입니다.넓은 계단이 옆에 따로 있어 필요한 사람외에는
거의가 옆으로 오르내리더군요.




역시 사업 건강 소원을 빌며 이름등을 적어 걸어두는 곳입니다. 절마다 엄청 많이 있어요.


청수사 본당건물입니다. 여러세기동안 가장 인기있는 방문지의 하나인 청수사. 청수란 순수한물을
뜻하는 말로서 마루야바코엔에서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가 다시 계단을 오르고 입장료를 끊고 들어서야
본당 건물을 만날수 있다.청수사는 778년 나라에서 온 승려 엔친이 세운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벽에는 본당에서 약10미터 정도 나온 부타이(무대)라는 마루는 139개의 나무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교토시내가 훤히 보이며 778년 창건되어 기요미즈의 관음으로 알려져 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절내에는 지슈신사를 포함해 15세기 말부터17세기의 건조물이 들어서 있고 봄에는 벗꽃과 신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계절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본당을 보고 동생내외와 함께...

청수사의 순수한 물이란 의미를 담고있는 오토아노타키 세줄기 물은 오른쪽에서 부터 건강
사랑 (사업.공부)을 상징한다는데 한가지 소원을 마음속으로 이야기 하면 이루어 진다고 하는데
그리고 이물은 자루가 길어서 먹여 주어야만 마실수가 있다고... 싸운뒤에 여기에 오면 바로
화해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간날은 공사중이라 마시질 못했고 사진만
찍고 돌아 나왔다.

청수사로 오르는 길목엔 부채, 각종 칼종류. 닌자들이 사용하던 표창등을 비롯해 관광상품등을
파는 가게 들이 줄지어 있는데 같은 제품인데도 밑으로 내려갈수록 50엔씩 싸게 팔고 있었다.
관광지인데도 각종 장아찌 종류 등 단무지를 파는 가게가 많았다.

청수사 입구 주차장옆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점심식사 주로 돈까스 종류가 많았고 우동과 밥은 역시 리필이 가능 하였지만
반찬은 사먹어야 했다. 리필한 우동이 오히려 양이 더많아 충분히 먹을수 있다.

사흘동안 타고 다닌 버스에도 팻트병 한병당 150엔을 받고 판다는 문구가 적혀있었지만
아무도 사먹지는 않았다. 호텔서 나올때 미리 받아가지고 다녔고 식당에서 다시 채워
다녀 별로 물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식당에는 거의가 정수기가 없으며 끓인물을 사용
하고 있었다. 보리차. 엽차. 우롱차등등...목이 마를땐 음료수를 뽑아먹고 특히 포카리
스웨트 ,아이스크림 등드 자판기가 워낙 많다 보니 에로사항은 없었다.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잠들어 있는 풍국신사다.
수많은 조선 백성들의 귀와 코를 잘라 내어 본국으로 보내게한 장본인이지만 귀무덤 앞에
신사를 만든건지 아님 신사 앞에 귀무덤을 만든건지 불과 50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묵념을 하고 무덤옆에 써인 글을 인용해 옮긴다.
이무덤은 16세기말 일본전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진출의 야심을 품고 조선을 침공한
이른바 분로쿠 게이초의 역(한국역사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년)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대신에 조선군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이러한 전공품은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이곳에 매장되어
공양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이것이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귀,코무덤의 유래이다.
이무덤은 사적 오도이 토성과 함께 교토에 현존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관련 유적중 하나이며
무덤위에 세워진 오륜석탑은 1643년에 그려진 그림지도에도 이미 그모습이 나타나 있어 무덤이 축조
된지 얼마 되지않아 창건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전쟁은 조선 민중등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서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무덤은 전란하에 입은 조선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오늘날 까지 전해지고 있다.
"무덤 바로옆에는 사비를 털어 귀무덤을 관리하는 올해 93세의 시미즈노인이 살고 있는 집이 있다.
그날도 우리가 묵념을 올리는 시간에 나와서 우리들을 쳐다보며 서있었고 삼대에 거쳐 귀무덤을
관리를 해왔다고 하는데 이노인이 죽고나면 누가 관리를 할지 모른다고 한다. 모든 역사를 망각하고
다시 군국주의로 가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그래도 한가닥 양심적인 역사관을 갖게 하는 이분은 모든걸
자기 조상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되갚기 위한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