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9월17일 일요일
근 석달만에 낙동을 타기로 했는데 이번 역시 태풍이 온다고 한다. 비로 인해 미룬지가 벌써 석달로
접어들고 갈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12시 출발 낮부터
간간히 내리던 비는 가는내내 그칠줄을 모르고 새벽 5시 아랫삼승령에 도착을 하니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만이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귓전을 때리며 흩어진다. 정자가 있지만은 비바람 때문에
편히 앉을 곳은 못되고 간신히 바람을 막아가며 라면을 끓여 아침을 먹는다. 점심을 먹을 장소까지는
차로 짐을 이동하기로 하고 작은 베낭에 간단하게 간식과 물을 챙겨 가지고 서둘러 출발준비를 한다.

출발직전 정자가 있는 아랫삼승령에서 맥팀이 모여 한컷하고 출발을하니 6시 15분이다. 먼저번 학산봉을
가기전 내리막 안부까지 산행을 하고 계곡을 따라 하산을 하였지만 비바람속을 뚫고 어두운 산길 찾기가
수월하지 않아 다시 아랫삼승령에서 출발을 하기로 했다. 수북이 쌓여 있는 굴참나무 길을 들어서니
푹신한 감각이 발밑에 느껴 지지만 잠시뿐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니 금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고 다시 내리막을 내려서니 먼저번 왔던 안부가 보인다. 역시 먼저번 처럼 멧돼지들이
목욕을 하는 장소 인지 물기가 있는 진흙밭은 뒹굴은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시 서서히 가파라 지는 언덕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니 지도상의 학산봉이다. 비옷 때문인지 아님
땀인지 구분이 안가는 몸은 이미 젖어 버리고 한모금 물로 갈증들을 해소 하고 왼쪽으로 꺽여 있는
길을 따라 다시 내달린다.

주위는 짙은 안개와 비바람으로 인해 조망과 시계제로 상태고 날리는 비옷만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바쁜 산객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짐승의 울음소리 마냥 웅웅거리는 바람소리만이 적막을 가르며
옆으로 따라 붙는다. 편한 안부길 같으면서도 작은 오르내림이 이어지더니 작은재를 지나 봉우리를
올라 서는데 어딘지 분간이 서지 않지만 지도 상의 645봉으로 생각되어진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곡주 한잔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다시 왼쪽으로 이어진 내리막길을 내려서지만
오름과 마찬가지로 젖어있는 길은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급경사로 사정없이 미끄러져 쏟아져
내려가며 정신없이 내달리더니 어느덧 평지같은 안부가 시작되고 전형적인 육산의 형태를 티고 잡목과
굴참나무 만이 온주위를 감싸고 있다. 지도상의 지경고개로 생각 되어 지는 곳이다. 간간히 보이는
소나무는 관리소홀로 이미잡목으로 변해 버린 상태고 무심한 세월속에 이미 자연의 상태로 돌아선
고목만이 세월의 흐름을 짐작케한다.

편한 안부 능선길엔 안개만이 자욱하고 내리막으로 내려서는 길목엔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벌초를 한지
얼마 되지않아 잘 다듬어진 무덤 한기가 나오는데 후손들은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할정도로 높은데 있어
성묘하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닐정도로 느껴진다. 혹 조상님이 자손의 건강(?)을 생각해서 이렇게 높은
데 쓰지 안았는지... 다시 작은 능선은 이어지고 한참을 내려오니 역시 벌초를 않은 무덤을 다시 지나고
내리막길을 뛰다시피 내려서니 임도가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밤남골로 내려서는 도로고 왼쪽으로는
백청리 망성골로 내려서는 도로지만 지금은 송이버섯을 채취하려고 오는 차량으로 인해 깨끗하게
도로가 잘 정비 되어져 있었다.

지역 주민의 차인듯한 트럭이 무슨 용도로 올라왔는지 임도 부근에 주차해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9시10도착)

임도서 부터 주민들의 송이버섯 채취선이 산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며 따라오고 있다. 임도를 지나
작은 고개를 넘어 서니 넓은 안부가 나오는데 사거리가 뚜렷이 있지마는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어
어딘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독경산으로 오르는 길은 역시 가파른 오름을 만들어 놓았다. 힘든 발걸음을
옮기며 올라서니 잘 다듬어진 넓다란 헬기장이 나오며 산불감시탑이 함께 서있다.(9시45분)

독경산 정상 헬기장

산불감시탑 시시 카메라가 달린 탑이다.

정상에 모인 맥종주팀 빗속에 다시 포즈를 취하고...

독경산을 지나 작은 봉우리를 지나니 날등 능선이 잠시 이어지고 내리막길이 나온다. 바람으로 인해
굴참나무 가지가 연신 소리를 내며 부러지고 사정없이 후려치는 비바람에 나뭇잎이 낙엽아닌 낙엽이
되어 흩날린다. 이번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인해 다시 많은 나무들이 몸살을 앓을듯 하다.
잠시 마지막 내리막을 내려서니 산길옆으로 918지방도가 보인다.

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이라 그런지 벌목을 한 덕분으로 잘자란 춘양목이 가지런히 서있고 바로밑 창수령
에는 우리가 타고온 봉고 차가 기다리고 있다. (10시5분도착)

맹동산 등산로 팻말을 보고있는 일행들. 창수령은 영양군 영양읍과 영덕군 창수면을 잇는 918 지방도로
모양새가 자라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일명 자라목이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비로 인해 점심을 먹을 장소도 마땅치 않았지만 기사님이 배려한 덕분에 차량을 이용해 천막을 치고
점심을 먹고 있지만은 이미 비에 젖어버린 몸이라 한기가 엄습해 와 모두들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여자종주팀은 너무 지쳐 빠지기로 합의를 하고 남자들만이 역시 간식만
챙겨서 산행을 하기로 한다.(11시10분 출발)

안테나가 서있는 뒷쪽 산길로 접어 들어 오름을 오르니 점심을 먹어서인지 호흡이 다소 거칠어 지지만
아낙네들을 두고 남자들만 들어 서선지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다소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니
부드러운 안부 능선길이 이어지고 잡목들과 굴참나무 숲길사이로 간간이 무덤들도 보인다.
내처 내리막을 내려서니 율치재가 나온다. 
율치재는 영양군 양구리와 영덕군 창수면을 잇는 임도지만 송이버섯이나 약초를 캐러 오는 주민들
때문인지 비교적 길이 양호한 편이었다.(12시10분 도착)
여기서 율치재에 관한 전설 하나를 옮겨본다.
옛날에는 석양(夕陽)에 이 재를 넘으면 반드시 그 나그네는 참상을 입었다해서 울고 넘는다는
뜻으로 울티재(泣嶺)라 했다 하며 저녁만 되면 이 재 넘어 가기를 꺼려했다 한다.
어느날 원님이 오다가 길에서 풀벌레를 보고"저 벌레가 무슨 벌레냐?"하고 물었다.
「범 아제비입니다.」하고 하인이 대답하였다.
조금 더 오다가 호랑이(범)을 만났다.
겁이 났으나 정신을 차리고 "내가 오다가 자네 백부(伯父·阮丈)를 만났으니 길을 비켜라"하니
범(호랑이)이 길을 비켜주어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또하나
울티재는 영해 고을의 교통의 요충지로 영해 고을을 오고가는 대소의 관리들이 처음 이 고개를
넘으면반드시 죽음을 당하곤 하였다는데....
어느날 간이 큰 손순효(孫舜孝)가 경상도 감사가 되어 울티재에 내려와 주위를 살핀 다음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베고 글을 쓰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고 하는데.
汝揖火散乎晩歲(여읍화산호만세) 我將淪命慰群氓 (아장륜명위군맹)
個中輕重誰能會(개중경중수능회) 白日昭然照兩情(백일소연조양정)
너희들이 공손히 화산곡(華山曲)을 만세토록 부른다면 내 장차 임금의 명을 받아 너희들을
위로하리라.
개개일들의 가볍고 무거움을 누가 능히 헤아리랴 밝게 비추는 햇님이 우리 양 충정을
비추어 주지 않은가
그러자 바로 괴이한 일들이 없어지고 이후로는 흉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울티재는 괴이한 일들이 없어졌다고 하여 파괴현(破怪峴)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 2년(1393) 5월에 전조 고려 왕씨들의 후예들을 영해로 옮겨
살도록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후예들이 점차 장성하면서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으로
범아제비 혹은 산적 등으로 변장하여 새왕조의 관리들을 살해하여 선조들의 원한을 갚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 왕조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오래 방치하면 구왕조의
부흥운동이 일어 날까봐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손순효(1427∼1497)를 경상도 관찰사(감사)로
삼아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 때가 성종 16년(1485)이었다.

율치재를 지나 오름을 올라서니 비바람은 여전 하지만 다소 조망이 트이며 안개가 잠시 걷히는듯
하더니 다시 주변을 덮어 버리는데 맹동산 쪽으로 우리가 가야할 능선을 잠시 보여 주고는 다시 안개
속으로 묻어 버린다.

율치재를 넘으면 나오는 당집이다. 아무도 살지않은 이곳은 마치 흉가 처럼 보이고 집뒷쪽으로 돌아서
산길은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목 오른쪽으로는 917번 지방도로가 나무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봉우리가 연이어 나오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한기를 떨쳐버릴듯 바쁘게 돌아간다.

마지막 육산길을 오르니 분지같은 평지가 펼쳐지고 마치 대관령 선자령에 선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넓은 녹색지대가 펼쳐진다.

더덕 재배단지라고 팻말에 쓰여있는 녹색지대가 마치 잔디가 깔려있는 푸른 초원 처럼 느껴진다.

곧이어 고랭지 채소밭이 나오더니 이어서 무우밭이 나오는데 장단지 만한 무우들이 뽑혀 있는걸로
보아 한번 작업을 하고는 그대로 둔 모양새다.


목장 삼거리로 가는 길목에 사나운 개한마리가 처량하게 비를 맞고걷는 낮선 산객들을 보고는
사정없이 짖어 대고 있다. 다행히 묶여 있지만 혹시나 산길에 몇마리만 맞닥뜨려도 감히 접근조차
못할 기세로 울부짖고 있었다.

이방인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안내글이 붙어 있는 목장길을 따라 우리가 가야할 하산길인 임도 삼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목장길을 따라 약10여분을 걸으면 임도길이 갈라지는데 오른쪽으로는 천마 농장과 곰취농장으로
가는길이며 90도이상 꺽여서 좌로 돌아가는 임도길이 정맥길이다. 임도 삼거리로 가는 길목은 계속해서
임도가 나란히 맥길과 함께 하며 이어지고 마지막에서 좌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내려 가면 임도 삼거리
가 나오는데 점점 갈수록 태풍의 영향은 더욱 커지며 비바람도 더욱 거세어 진다. 약속장소인 임도
삼거리에 도착하니 바로 건너편으로는 다음구간 가야할 봉화산이 버티고 서 있지만 벌써 도착해
있어야할 차는 보이지를 않고 지도를 펼쳐 보니 아마 기사님이 들어서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해 서둘러 다시 돌아서서 온길을 따라 삼의리 봉의곡 계곡을 따라 하산을 하기로 결정을 한다.
이미 비에 젖을대로 젖은몸은 제기능을 잃어 점점 추워져 오고 서둘러 하산을 하지 않으면 큰일을 당할
것 같아 빠르게 이동을 한다.

빙의곡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목에는 작지만 아담한 소폭도 있고 지방도 까지 내려왔지만 전화와
모든 짐을 차에 두고 온터라 연락할 길이 막막하다. 마침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삼 상의 이장님
댁에 도착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임시로 고추를 포장하는 하우스에 들어서서 기다리자니 추워서
총무님이 이장님댁에 가서 소주를 조금 얻어 와서 마시니 다소 추위가 가신다. 그사이 연락이 닿아 접선을
하고 젖은 옷을 갈아 입고 무사히 귀가를 할수 있었다. 미쳐 제대로 인사도 못드리고 왔지만 도움을 주신
상삼의 이장님 사모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낙동정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피나무재서 가사령까지 (0) | 2008.09.24 |
|---|---|
| 황장재서 주왕산 절골까지 (0) | 2008.09.24 |
| 검마산 자연 휴양림서 아랫삼승령까지 (0) | 2008.09.24 |
| 땅고개서 아화 고개까지 (0) | 2008.09.24 |
| 소호고개서 땅고개까지 (0) | 2008.09.24 |